토베얀손은 핀란드의 대표적인 예술가인 동시에 세계적인 독자를 보유한 작가이다. 소설가이며 자신의 소설에 그림을 그린 화가인 토베 얀손은 만화가, 연극 연출가 등 다방면의 분야에서 활동한 천부적인 예술가였다. 그가 창조한 스토리텔링 캐릭터 <Moomin>은 75년의 역사를 지속하며 OSMU(One Source Multi-Use)의 영역으로 확대되며 전세계 5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 음악, 상품, 영상, 게임, 카페, 테마파크. 전시회 등으로 라이선싱이 전개되고 있다.
토베의 아버지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피가 흐르는 빅토르 얀손(1886년 출생)이었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스웨덴 태생의 시그네 하마르스텐 얀손(1882년 출생)이었다. 빅토르와 신그네는 유학 중 파리에서 만나 1913년에 결혼했다.
조각가로서 활동한 빅토르가 즐겨 만드는 조각물들은 여성의 모습이었다. 가장 잘 알려진 조각 작품으로 핀란드 헬싱키의 Kaisaniemi 공원에 있는 'Convolvulus(1931)'의 모델은 그의 딸 토베였다.
토베의 어머니 시그네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였다. 시그네는 핀란드 은행의 지폐를 디자인 했다. 또한 1929-1962년 사이의 모든 핀란드 우표를 디자인 하기도 했다. 토베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뻬르 올레브 얀손(1920년 출생)과 라스 얀손(1926년 출생)이며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두 명 다 예술가로 성장했다. 뻬르 올레브는 사진작가였으며 라스는 작가로 데뷔했지만 후에는 무민 만화가로 활동한다. 남매들은 서로 활발히 작품을 공유했는데, 가장 잘 알려진 합작은 토베와 라스가 함께 그린 무민 만화와 토베를 주제로 해 뻬르 올레브가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토베에게 가족과 가정은 가장 중요했으며 가족들은 모든 방면에서 서로를 믿고 지지했다. 토베의 어린 시절 일상은 예술가인 온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었으며, <Moomin>이 따뜻한 가족의 스토리 속에서 무민파파와 무민마마, 그리고 여러 친구들을 한 가족처럼 어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무민 가족들은 무민 하우스에 방문하는 모두에게도 따뜻한 가정을 선물한다. 스토리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마찬가지이다.
Islands
어릴 적 토베는 스웨덴의 다도해에 있는 친척집에서 여름을 보냈다. 이 곳은 Blidö 지역으로, 무민밸리와 무민하우스의 영감이 됐던 테라스와 좁은 타워가 있는 여름 별장이 있었다. 그리고 스웨덴과 핀란드 사이의 다도해에 있는 Pellinki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도 가족의 전통이었다. 이처럼 '섬'은 토베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이었다.
1960년대 초, 토베와 그의 파트너 뚤리끼 삐에띨라는 Pellinki 다도해에서 Klovharun라는 멋진 섬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 섬에 조그마한 여름 별장을 짓고 서른번이 넘는 여름을 별장에서 함께 보냈다.
토베에게 섬들은 자유의 상징이었다.
Studying
토베는 학교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예술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핀란드 헬싱키의 Brobergska samskolan을 졸업한 후 1930년 초가을, 스웨덴의 Stockholm Technical School에서 세라믹 장식, 채색과 소묘 등 응용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33년 토베는 헬싱키로 돌아와 핀란드 국립 미술관 'Ateneum'에 있는 소묘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1938년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L’École d’Adrien Holy와 L´École des Beaux-Arts에서도 공부했다.
Travelling
토베는 핀란드와 스웨덴 외에, 프랑스 파리 등 해외에서도 생활했다. 1970년대 토베와 그의 파트너 뚤리끼 삐에띨라는 작품과 여가 활동을 위해 전 세계를 8개월동안 여행했다. 이 여행은 무민 가족을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도서를 집필하며 동시에 스트레스를 잊기 위한 휴식이었다. 여행은 토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였다. 여행을 통해 그녀는 예술적 영향 외에도 평화롭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Studio
1944년 토베는 헬싱키의 Ullanlinna에 있는 작은 탑의 작업실로 이사했다. 그 건물은 처음에는 허름했지만, 토베는 몇 년에 걸쳐 그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바꿔 나갔다. 토베는 수십 년 간 그 곳에서 살면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또한, 최초의 무민 소설을 이 스튜디오에서 집필했다.
Career as a writer
무민 소설 외에도 토베는 12개의 소설과 단편집을 썼다. 그는 일반 산문, 동화, 모험담, 판타지, 회고록, 그리고 심지어 대화 방식의 작품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 작가로 칭송 받고 있다. 성인을 위한 도서를 통해 '인간 관계의 불확실성 그리고 상대성'을 주로 다루었다.
토베는 글을 통한 문학적 깊이를 담는 동시에 거기에 가장 적절하게 어울리는 그림을 같이 창작할 수 있는 세계의 몇 안되는 독보적인 작가였다. 토베는 스토리와 그림을 통해 '항상 돌아갈 수 있는 고향과도 같은 가족'의 따뜻함을 만들고 싶어했으며 수 많은 상과 부의 축적보다 가족와 따뜻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
Career as a visual artist
시각 예술가로서 토베는 다재 다능했으며, 여러 가지 기법과 스타일을 적용했다. 1940년대 초, 토베는 Garm이라는 사회 풍자적인 잡지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Garm의 커버용 사진들과 수 백 가지의 그림들을 그렸다. 전쟁 동안의 보헤미안적이고 예술적인 삶과 일상적인 삶 모두를 그렸지만, 이 시기에는 정치 풍자 만화를 주로 그렸다.
토베는 화가로서 활동과 동시에 'UNICEF', 'AMNESTY' 등과 의 공공 캠페인 작품에도 참여했다.
공공 사업과 장식용 그림들도 그의 작품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Teuva 교회의 제단 뒤 조각품뿐만 아니라, 헬싱키 시청의 유화, 헬싱키에 있는 오로라 어린이 병원의 벽화 그리고 학교, 유치원에 있는 벽화들 모두 그의 주요한 공공 작품들이다. 작품 활동 기간 동안 토베는 몇 번의 단독 전시회도 진행했는데, 전시회를 비교해 보면 예술 스타일의 발전 정도를 알 수 있다. 다양한 주제를 다룬 그의 작품들은 유행을 추구하지 않고 독창성으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예술품이었다.